출근 길 도심에서 만난 새끼 고라니, 그날 내가 할 수 있었던 일

 

얼마 전 출근길에 좀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그날따라 아침부터 푹푹 찌는 날씨였는데, 버스에서 내려서 정류장 옆 풀숲을 지나가는데 뭔가 꿈틀거리는 게 보이더라고요. 아침 7시, 아직 잠도 덜 깬 데다 주변이 워낙 조용해서 순간 진짜 놀랐는데 자세히 보니 새끼 고라니 한 마리가 겁먹은 눈으로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얘는 왜 여기 있을까, 엄마는 어디 갔을까' 별생각이 다 들었어요. 위쪽 둔턱에 수풀이 있었는데 아마 거기서 떨어진 것 같았고, 다리도 좀 불편해 보였습니다. 순간 안아서 올려주고 싶었는데, 괜히 손댔다가 더 안 좋아지면 어쩌나 싶어서 참았어요. 대신 그늘 쪽으로 살살 옮겨주고 한참을 지켜봤습니다. 30분이 지나도 어미가 안 나타나길래 신고를 했고, 20분을 더 기다려도 아무도 안 오길래 물이라도 줘야겠다 싶어서 사무실에 잠깐 올라갔다 왔어요. 그런데 그 짧은 사이에 사라지고 없더라고요.

끝까지 못 챙겨줬다는 마음이 한동안 계속 남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럴 땐 대체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걸까' 싶어서 이것저것 찾아봤어요. 혹시 출퇴근길에 비슷한 상황을 마주치는 분들이 있을까 싶어서, 오늘은 그 얘기를 조금 풀어보려고 합니다.

다친 고라니 이미지


새끼 혼자 있다고 무조건 도와줘야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사실 저도 처음엔 '버려진 거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어미가 근처에서 사람을 경계하며 지켜보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하더라고요. 고라니는 새끼를 풀숲에 잠깐 숨겨두고 먹이를 구하러 다니는 습성이 있어서, 사람 눈에는 방치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일 때가 꽤 있대요. 그래서 무작정 손부터 대기보다는 일단 멀찍이서 지켜보는 게 먼저라고 합니다.

왜 함부로 만지거나 옮기면 안 될까요

사람 손이 닿으면 몸에 사람 냄새가 배는데, 이게 어미가 새끼를 경계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해요. 눈에 보이는 상처나 출혈, 부러진 것 같은 다리처럼 확실히 다친 흔적이 없다면, 4~6시간 정도는 멀리서 지켜보는 게 좋다고 합니다. 그 시간 동안에도 어미가 안 오고 움직임이 이상하거나 상처가 보인다면, 그때 신고를 생각해봐도 늦지 않아요.

그런데 4~6시간 동안 지켜보고 있기엔 저도 출근을 해야 하고… 참 마음은 그러고 싶은데 그렇지 못한 상황이었어요…


고라니 이미지2



신고, 언제 어디로 하면 될까요

확실히 다쳤거나 충분히 지켜봤는데도 어미가 안 온다면, 그때는 지자체 환경 관련 부서나 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 아니면 119로 연락하면 됩니다. 경기도라면 경기도야생동물구조관리센터(031-8008-6212)로 연락할 수 있고, 다른 지역이면 '지역명 + 야생동물구조센터'로 검색하거나 사는 곳 시·군·구청 환경 부서에 물어보면 정확한 번호를 안내받을 수 있어요. 신고할 때 위치랑 상태(어디를 다쳤는지, 움직이는지 등)를 구체적으로 말해주면 출동이 훨씬 빨라진다고 하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소형 동물이라면 신고 후 구조대가 올 때까지 계속 현장에 있을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저는 지역번호+120 센터에 먼저 물어봤고, 관할 구청으로 연락하면 된다고 하여 관할 구청에 전화를 했군요. 이른 아침이라 당직자분께서 받으신 것 같았고 출동을 해주시겠다고 마무리했습니다.

고라니 이미지3


물이나 먹이는 참는 게 낫다고 해요

안쓰러운 마음에 물이나 먹을 걸 주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이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주는 음식이나 방식이 오히려 야생동물한테는 맞지 않을 수 있어서 권장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늘로 옮겨주는 정도가 저희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고, 나머지는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서로에게 안전해요. 참고로 고라니는 다 자라면 사람에게 발길질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성체를 만났을 땐 더 조심하시는 게 좋습니다.

출퇴근길에 다친 야생동물을 만났을 때, 이 정도만 기억해두세요

상황이렇게 하면 돼요
외상 없이 혼자 웅크리고 있음손대지 말고 멀리서 지켜보기, 어미가 올 시간 주기
출혈·골절 등 눈에 보이는 부상지자체 환경부서·야생동물구조센터·119로 바로 신고
신고하고 나서위치·상태 구체적으로 전달, 소형동물은 계속 안 기다려도 됨
다 큰 야생동물과 마주쳤을 때거리를 충분히 두고 절대 다가가지 않기

그날 이후로 같은 정류장을 지날 때마다 그 풀숲을 한 번씩 돌아보게 돼요. 끝까지 지켜보지 못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오면 조금은 더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매일 똑같이 지나가던 출근길에도 이런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는 걸, 그날 아침에서야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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